경주
경주문무대왕릉
[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30-1]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봉길해수욕장 맞은 편 동해 바다에 위치한 작은 바위섬이며, 신라 문무왕의 왕릉으로 유명하다.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었으며, 일명 대왕암(大王岩)과 대왕바위라고도 한다.
본문
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이룬 뒤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안장하면 용이 되어 불법을 떠받들고 나라를 지키겠다고 유언하고는 재위 21년(681)에 사망했다. 신문왕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서 장사하였다.
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의 용이 된 부왕을 위해 인근에 왕사(王寺) 감은사를 세우고, 용이 드나들 수 있는 수로까지 파 놓았는데 이 수로가 동해 바다로 이어져 대왕암으로 직결된다. 신문왕이 만든 전망대(이견대) 역시 대왕암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장소에 있다. 이 대왕암은 오랫동안 '댕바우(대왕바위)'라 하여 문무왕의 왕릉으로 알려졌고, 해녀들은 이 근처를 신성시해서 가지 않았다고 한다.
대왕암이 한때 잊혀져 있던 걸 후술할 1967년에 '발견'했다고도 알려져 있지만, 이미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고유섭이 발표한 <경주기행의 일절>에서도 '모름지기 경주에 가거든 동해의 대왕암을 찾아 문무왕의 정신을 기려 보라'고 할 정도로, 이미 대왕암이 문무왕의 유적이란 건 알 만한 사람들한텐 모두 알려져 있었다. 물론 지금처럼 방문객이 꾸준히 있는 그런 관광지는 아니라서 1970년대까지 대왕암 앞은 지금과 달리 인기가 하나도 없고 오가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든 말 그대로의 '동해 바다'였지만,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 밤에는 참배객들이 마치 약속된 시간인 것마냥 기도하러 찾아왔다고 한다.
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의 용이 된 부왕을 위해 인근에 왕사(王寺) 감은사를 세우고, 용이 드나들 수 있는 수로까지 파 놓았는데 이 수로가 동해 바다로 이어져 대왕암으로 직결된다. 신문왕이 만든 전망대(이견대) 역시 대왕암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장소에 있다. 이 대왕암은 오랫동안 '댕바우(대왕바위)'라 하여 문무왕의 왕릉으로 알려졌고, 해녀들은 이 근처를 신성시해서 가지 않았다고 한다.
대왕암이 한때 잊혀져 있던 걸 후술할 1967년에 '발견'했다고도 알려져 있지만, 이미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고유섭이 발표한 <경주기행의 일절>에서도 '모름지기 경주에 가거든 동해의 대왕암을 찾아 문무왕의 정신을 기려 보라'고 할 정도로, 이미 대왕암이 문무왕의 유적이란 건 알 만한 사람들한텐 모두 알려져 있었다. 물론 지금처럼 방문객이 꾸준히 있는 그런 관광지는 아니라서 1970년대까지 대왕암 앞은 지금과 달리 인기가 하나도 없고 오가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든 말 그대로의 '동해 바다'였지만,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 밤에는 참배객들이 마치 약속된 시간인 것마냥 기도하러 찾아왔다고 한다.